사찰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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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시내에서 5번 국도를 따라 영주방면으로 3㎞정도 가면 한티재에 이른다. 이 한티재를 넘어 2㎞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국도변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마애불상을 만나게 된다.

이 불상이 바로 보물 제115호로 지정된 안동이천동석불상이다. 속칭 ‘제비원미륵불’로도 불리는 이 불상 뒤편에 있는 조그만 절이 바로 ‘연미사(燕尾寺)’ 이다.634년(신라 선덕여왕 3) 명덕(明德)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명덕은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제자 중 한 명으로, 바위에 불상을 새겨 모시고 사찰을 세웠다. 그 뒤 불상을 덮은 지붕이 제비와 비슷하여 연자루(燕子樓)라 하였고, 승려가 거주하는 요사채(寮舍)는 제비꼬리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연미사(燕尾舍)라고 이름지었으며, 법당은 제비부리에 해당한다고 하여 연구사(燕口寺)라 불렀다.

고려시대 재난으로 불상머리가 굴러 떨어져 파괴 되자 다시 복원하고 전각 중수와 삼층 석탑을 조성하였는데, 이때부터 산 이름이 오도산(五圖山)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조선 중기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하여 연구사는 폐사되기에 이르고 다만 석불만 남아 있었다.
사찰의 이름 마저도 실전(失傳)되어 ‘연비원불사’로만 전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봉정사의 신도 모임으로 등촉계의 일원인 ‘거사림(居士林)’에서 사찰의 창건을 발의하여, 1934년 연미사 (燕尾舍) 유지(遺址)에 사찰을 새롭게 조성하고 구전(口傳)에 따라 연미사(燕尾寺)로 하였다.

법당인 대웅전은 1978년 증축하였는데 기존의 정면 3칸, 측면 1칸의 대웅전을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증축하였다. 1986년 단청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동이천동석불상’이 위치한 이 지역은 속칭 ‘제비원’으로 불린다. 그런데 이름에서 '원'은 사람들이 여행길에서 쉬어가던 일종의 여관을 뜻한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지방으로 출장 가는 관리들의 숙소로 쓰기 위하여 교통 요지에 있는 사찰을 국가적인 차원의 숙소인 ‘원(院)’으로 지정하여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영남에서 충청도나 경기도, 또 서울로 갈 때에는 반드시 안동을 거쳐 소백산맥을 넘어야 했는데, 그 길목에 있던 것이 바로 연비원 (燕飛院)이었다. 따라서 연미사(燕尾寺)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전설의 배경이었던 ‘연(燕)’, 즉 ‘제비’에 국가지정 숙박시설인 원(院)이 결합 되어 ‘제비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제비가 날아가는 쪽의 형세라고 해서 ‘연비원’ 또는 ‘연미원’ 이라고 하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석불상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을 모두 아우르는 명칭으로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특히 제비원은 성주풀이에서 ‘성주 본향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 일러라’라는 사설에 나오듯이 우리나라 성주민속신앙의 정신적인 근원지로서 자리매김되어 있는 뜻깊은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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